본 글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대사, 회사, 단체,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1부. 무언가 다른 것을 향한 창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엔지니어가 되어 보시겠습니까?

그 날은 아침부터 참 어수선했다. 총 3명이 근무하는 120만평 규모의 APAC 데이터 센터에서 2명의 노조원이 파업하는 바람에 종일 뭐 하나 되는 게 없었다. 다행히 오후 4시경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어 (33억원의 일회성 성과금과 120년 추가 근속 보장)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 하늘에는 회색빛 구름이 짙게 몰려들고 있었다. 서둘러 까까오 드론을 호출했다. 호출 가능한 드론이 없습니다. 3천만원을 지불하면 즉시 배차 가능한 드론이 있습니다. 이런 젠장할! 까무원들이 파업 이후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고 퇴근해버린 모양이다. 까까오는 대한민국의 대기업으로 총 7009개의 계열사가 있으며 계열사마다 사장을 포함해 총 2-4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어떻게 22세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까무원들을 비난하며 오랜만에 걸어서 집에 가보기로 한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AI가 등장하고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사람이 없으면 되는 게 없다니! 과거에는 한 회사에 수만 명의 엔지니어가 있었다고 한다. 역사책에 기록된 웹 검색 서비스인 코글(Koggle)을 만드는 데 수만 명의 기술자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이 50년이 채 되지 않은 게 아니라면 - 그저 전설에 불과해야 할 것이다. 혹은 수만의 인도인 - 현재는 모두가 인도 시민권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anyway - 을 가둬두고 답변을 시킨 것은 아닐까? 속기사 기술자가 그만큼 필요했…

아얏!

냉소의 늪으로 빠져드는 그 순간 다행히 회로가 멈추었다. 점순이는 어떤 잘생긴 남성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아 X 틴트 안 발랐는데’. 미안합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었다. 제가 사람의 기운을 좀 볼 줄 아는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대답했다. 권점순입니다. 무언가 사이비 같은 질문이었지만 남자가 잘생겼기에 이름을 알려주고 말았다. 정말 좋은 이름입니다. 사실 제 눈에는 점순씨 근처에 위대한 조상신이 머물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혹 권 점자 박자 쓰셨던 조상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가 답했다. 때가 되면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실 점순씨를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가 빨간 버튼이 하나 달린 하얀 박스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당신은 즉시 타인의 삶의 파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보아하니 점순씨는… 그렇군요. 권점박씨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엔지니어 중 하나로 코글에서 전설적인 업적을 이루셨지요. 어떠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엔지니어가 되어 보시겠습니까?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미 내 손은 버튼으로 향하고 있었다. 손에는 살짝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전설의 권점박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배를 처음 폈을 때처럼 머리가 핑 돌며 잠시 의식을 잃는 듯 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창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잘생긴 남자는 없었고 나는 내 방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뭐지… 개꿈인가… 침대에서 일어나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 낯선 장면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어… 이… 이건…! 점순이는 깨달았다. 코글의 전설은 허언이 아니었음을. 이건… 내가 해야만 해. 점순이는 펜을 집어 들었다.

‘이 이야기는 100여년 전 실제로 존재했던 어느 위대한 엔지니어의 기록입니다. 이 전설적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가십으로 씹어 넘겨도 좋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이야기를 알아본다면, 그래서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질 수 있다면, 저의 소명은 그것으로 다할 것입니다. …‘

2부. 꿈은 교훈

코글도 이제 퇴물이구나

점박이는 2024년 (주)코리아글로벌소프트(이하 “코글”이라 한다)에 입사했다. 코글은 과거로부터 천재들만 들어가는 회사로 유명한 곳으로, 너무 비현실적인 회사인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글에 가는 것을 꿈조차 꾸지 않는 회사였다. 점박이는 합격 소식을 듣고 나 같은 정신병자를 뽑다니 코글도 얼마 안 남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점박이는 기뻤다. 세간의 사람들은 코글이 미쳐버린 것을 알지 못했기에 점박이의 위상이 나날이 드높아질 일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점박이는 손에 들고 있던 배달앱 전단지를 집어던지고 즉시 코글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너는 하던 것만 해?

코글에 다닌지 18개월 정도가 지날 무렵, 점박이는 오늘도 근무시간에 까똑으로 농담이나 따먹으며 친구들과 루팡하고 있었다. 친구1이 말했다. 프론트엔드는 잘 못해. 친구2가 맞장구 쳤다. 나도 맨날 백엔드만 해. 웹개발도 좀 해야 하는데 하기 싫어. 점박이는 큰 위화감을 느꼈다.

어떻게 맨날 아는 일만 할 수 있지? 이미 아는 걸 반복해서 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당연히 매번 모르는 일을 하는 게 아닌가?

그들은 점박이가 인정하는 실력자들이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원래는 점박이도 맨날 하던 것만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건 내가 하면 가성비가 안 나와. 난 저거 잘하니까 저것만 할게. 점박이는 본인이 얼마나 싹바가지 없고 고졸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무릇 공학도라면 1. 현상이나 진리 따위를 탐구하고 2. 새로운 개념을 제안할 수 있고 3. 그 개념이 왜 필요한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탐구란 새로운 이치나 지식을 찾아내는 것인데, 본인이 아는 길로만 다니는 것을 진짜 탐구라고 할 수 있을까? 점박이는 자신도 모르게 모르는 게 당연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익숙한 길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새롭고 좋은 것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XX 진짜 XXX나네 !

코글에서 점박이의 가장 큰 스트레스 공급원은 바로 끝도 없이 새로 튀어나오는 제약이었다. 코글에는 바깥 세상과 다르게 수많은 기술적 지침, 제약, 의무가 있었고 조직과 개인의 이해관계, 성과 측정, 5조 5억개의 시스템, 글로벌 협업 환경 등 무수한 제약이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젠 진짜 뭐 없지? 됐나? 아니 XX 무엇 하나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점박이는 곧 해치웠나?, 이게 말이 되나? 같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말들은 그저 스스로의 약함을 반증하는 자조적인 비난일 뿐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해낼 일이었고, 그들이 한다면 점박이도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이후 점박이는 모르지 뭐 ㅎ, 일단 머리부터 박고 생각해 볼까?, 흠 안 되네 그럼 이렇게 해볼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바깥 세상에서 푸는 문제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점박이는 당황하는 수밖에 없었다. 점박이의 눈에 그 문제들은 너무나 쉬워보였다. 그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도 상관이 없고 아무런 제약이 걸려 있지 않았다.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이어서 점박이는 깨달았다. AI가 바깥 세상에서 잘하는 이유는 그저 뻔한 문제(이미 AI가 풀이법을 아는 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탐구를 멈추지 않는 한, 내가 죽을 일은 없겠구나.

우리가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뿐이다. 그것이 인간 지혜의 최고 경지다. -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그건 하기 싫… 그것은 이러한 이유로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참된 지혜는 모든 것을 아는 데 있지 않다. 인생에서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덜 필요하며, 무엇이 전혀 알 필요가 없는지를 아는 데 있다. - 인생의 길,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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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je.kwon

2026-05-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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