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의지다.

의지를 가지는 것은, 초연함을 포기하는 것이다.
초연함을 포기하는 것은, 상처받을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상처받을 자리를 내주는 것은, 절실함을 가지는 것이다.
절실함을 가지는 것은, 삶의 이유를 가지는 것이다.

무너질 사랑을 가지는 것은
무너질 삶의 이유를 가지는 것은
공허한 벌판에 깃발을 들어올려
이 삶은 나의 것이라는 책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쓰러질 것이 없다면 세워진 것도 없다.

사랑하겠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언젠가는 쓸려나갈 모래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은 존재의 필연적인 동작이다.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기대, 실망, 상실감, …
사랑의 색채이자, 삶의 감각이다.

이해, 믿음, 배려, 응원, 존경, 헌신, 양육, 용서, …
사랑의 모습이자, 삶의 동작이다.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면 사랑할 수 있다.
느끼고, 행동하는 존재라면 사랑한다.


정확히 한 달 전에 올렸던 글을 꽤 많이 수정했다. 한 달 사이에 사랑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 덕분에 나에게도 ‘사랑’의 정의가 생겼다. 이제 드디어 나는 ‘내가 아닌 것’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 나의 선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사랑해’라고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도, 단 한 번도 없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이전에 대상을 향한 마음의 표현이다. 언제든 바람에 실려 갈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삶에 대한 미련을 짊어지겠다는 선언이다. 대상을 위해 감정적으로 변하고, 상처받을 자리를 내어주고, 전적인 믿음을 주겠다는 의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나를 나눠줄 의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나의 세계를 가장 사랑한다. (‘나를 사랑한다’라고 적었다가 ‘나’가 뭔지 모르겠어서 바꿨다)

정말 사랑했던 건 전 여자친구, 스승님, 알고리즘 관련 활동, 뤼이드에서의 생활.
많이 사랑하는 건 부모님, 헬스, 귀여운 내 차.
요즘 사랑하는 건 사이드 프로젝트, 위스키, AI, 카메라, 커피, 와인, 꽃, 하늘, 나무, 바다, 한강, 수비드 머신, 러브버그, 에어컨, 친하게 지내는 구글 친구들, 며칠 혹은 몇 주 뒤에 이 글을 몰래 보고 있을 자주 연락 안 하는 음침한 친구들 …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마주하고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기회가 된다면 편지로 먼저 시작해 봐야겠다.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인류의 멍청함을 경멸하고, 인류의 최전선을 동경한다.
인류의 악의를 비난하고, 인류의 선의에 의지한다.
인류의 나태함에 좌절하고, 인류가 진보하길 기대한다.

어디 하나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 없다. 쓰레기 같은 사람, 무능한 사람, 존나 똑똑한 사람, 죽음과 싸우는 사람, 생을 포기한 사람, 그냥 사는 사람, 우주에 가려는 사람, 땡볕에 42km를 뛰는 사람, 쓸모없는 돈만 쌓아놓고 잘난 척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우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볼 수 없는 사람, ….

우리는 스파크처럼 눈부시게 튀었다 사라진다. 이 사랑하는 또라이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첫 번째 또라이는 나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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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je.kwon

2026-07-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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