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세상에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인간(人間), 사람 인 사이 간, 더이상 인간이 아닌 사람으로서 나는 뭘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모순이 깊어지고 논리가 순환하는 이 질문 속에서 나는 상상에 빠져보겠다. 나는 언제든 현실을 벗어나 이 상상 속으로 빠져들 수 있고 순간의 관념들은 여기에 모아둘 수 있다.


2025-01-10 13:53

만약 이 세상에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모두가 투명인간이 된 듯하다. 전기도 연결되고 생존의 위협도 없다. 다른 인간들의 역사와 내 통장 잔고는 먼지처럼 서서히 흩어진다.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고 인터넷도 의미가 없다. 예쁜 옷을 입을 필요도, 예의를 지킬 필요도, 회사에 갈 필요도 없다. 내 모든 발자취에는 어떤 존경도, 평가도, 위로도, 인정도 없다. 나는 죽거나 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4:09

자연 속으로 뛰어든다. 달에서 지구를 내려다보고, 뜨거운 용암 앞을 지나고, 에베레스트에 올라 지평선을 바라본다. 수평선 넘어 해가 지고 떠오른다. 더이상 새로운 풍경이 없어질 쯤에도 해는 지고 또 떠오른다.

사라질 수많은 장면들에 티끌만큼 스쳐 지나갈 나. 그림도 소리도 모두 지나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14:21

만약 이 세상에 사람이 나와 대중들만 있다면?

잘 모르겠으나 한 걸음 두 걸음 떼어본다. 존재하지 않는 시선이 내 온 몸을 꿰뚫고, 내 발자취에 대한 얕은 평가가 이어진다. 지옥이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지만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평가를 쏟아낸다. 공기처럼 떠다니는 그들이 보이지 않게 몸 속으로 들어와 기도를 턱 막는다. 차라리 달에서 지구를 내려다 볼 때가 더 행복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이만큼 지옥같은 일인 줄 처음 느꼈다.

회사에서 일을 해본다. 동료가 아닌 대중들과 일을 하기에 어떤 관계도 느끼지 않는다. 승진을 해도 감흥이 없고 요직을 맡아도 재미가 없다. 순간순간 사라지고 있는 장면들을 대중들은 제멋대로 해석한다. 뒤돌아서면 잊혀지는 대중의 박수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들은 듣지 못한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을 이유도, 영향을 끼칠 이유도 찾지 못한다. 그들은 게임 NPC처럼 정해진 말을 반복한다.


2025-01-11 00:03

만약 이 세상에 ‘인간’이 나와 사랑하는 사람 단 둘뿐이라면?

무채색인듯 아닌 듯 하던 세상에 색깔이 돌아온다. 공기가 따뜻해지고 주변 풍경은 두루뭉실 사라진다. 장작불처럼 뜨겁기도 따뜻하기도 하다. 어느 날 혼자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온다. 급하게 그 사람을 끌어안아 본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대로 품에 안겨 움직임이 멈추고 두 인간은 조금씩 사라진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00:23

만약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우주로 올라가 지구를 내려다 본다. 고요하다. 날아가는 미사일을 하나 붙잡아 부숴본다. 머리 위로 8개의 미사일이 지나간다. 내버려 두기로 한다. 시간을 돌려 성경이 처음 기록되는 모습을 지켜본다. 왕조가 몰락한다. 도시에 불길이 오른다. 사랑을 나누고 미워한다. 새 생명을 부여하고 거두기도 한다. 웃음과 울음이 겹쳐 들린다. 조용히 메말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다. 전능함의 모순을 깨닫는다. 나는 모두에게 희망이나 즐거움을 줄 수 없다. 나는 가장 빛나는 별이 되어 사람들 머리 위로 눈처럼 내린다. 피부에 닿으니 왠지 따스하다. 잠시 하늘을 밝히고 서서히 잦아든다. 나는 스스로 사라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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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je.kwon

2026-01-1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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