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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도 인정한 AI(= ChatGPT) / 로부터 살아남는 방법
다가올 시대의 단편에 대해 예전부터 같은 생각을 해왔는데, 최근 이 상상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 모두가 1인 사업자인 모습에 가까워질 것이다; 동일한 사업체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압도적으로 줄어들고, 새로운 사업의 진입장벽이 압도적으로 낮아진다.
- 스스로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다; 더 이상 남이 던지는 질문에 답변만 하는 사람이 설 자리는 없다.
-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다;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다루는 유일한 장치는 추상이다.
- 규율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다; 약속은 만들어 나가는 것일 뿐 묶여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다; 선구안이 없다면 쓰레기 더미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 기본에 충실한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다; 새로운 것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기초 위에 닻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살아남을 것이다’를 ‘성공할 것이다’로 바꾸어도 어색함은 없다. 다만 나는 이것들에 아무것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살아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것들을 생존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또한, 새로움이라는 개념은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미 있는 것의 변형 1, 2, 3, …의 가치는 압도적으로 낮아진다. 나는 새로움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정의하겠다. 이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얼마나 새로운지의 척도로 삼을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모든 생각들이 미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인류의 등장 이후 어느 시대에서도, 어느 집단에서도,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불변의 진리이다. (완급 조절을 잘못하면 목이 잘렸을 수는 있다 ㅎㅎ)
AI가 가장 먼저 없애버릴 (어쩌면 이미 없애버린) 직업은 바로 SW 분야의 테크니션이다. 내가 정의하는 테크니션이란 코딩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고, 성과 측정이 코드를 기반으로 일어나는 직업이다. 현재까지의 ‘주니어 개발자’라는 직업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코딩을 도구 중 하나로 취급하는 SW 엔지니어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감이 없다. SWE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은, SWE를 포함하는 모든 화이트칼라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말과 같아 보인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속도가 인지의 한계를 벗어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정답은 살던 대로 살면 된다. 왜냐면 새로운 것이 인지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도 더 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가 무한히 쏟아져 나오는 샘이 있고, 언제든 무엇이든 알려주는 도구가 있다면, 그야말로 인류의 가능성이 무한해진 것 아닌가? 말 그대로 인류가 전지하고 전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인류가 전지와 전능에 가까워질 수록 유일해지는 것은 바로 의도이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목성에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과거에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핵폭탄을 쏠 수 있다면 서울에 조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00살까지 살 수 있다면 60살 정도에 생을 끝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면 무엇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굶어 죽지는 않을 수 있는데 매일의 절반을 낭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류가 지금 바로 신이 된다면 과연 무엇이라도 선택을 할 수 있을까?
2026-02-24 23:02 추가 - 극단적인 가정을 접고 나니 다시 3인칭 관찰자로 돌아왔다.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은, AI는 인류를 전지에 가깝게 데려다 줄 수는 있지만 전능에 다가가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류가 얼마나 전지할 수 있는지는 인간이 얼마나 전능한가에 비례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요약하자면 자연스럽게 엔트로피가 (점점 빨리)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장이 물음표로 끝나야만 질문인 것은 아니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를 표방하는 것은 인류 전체를 향해 던지는 거대한 질문이자 새로운 가능성, 비전의 제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답하며 얼마나 많은 과학적, 공학적, 사회적, 경제적, 철학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또한 이 질문이 얼마나 많은 질문을 새로 낳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들이 던진 질문 속에서 살아 가고 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또한 나의 질문 속에서도 살아 가게 될 것이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친다.
당신의 마지막 일기에 적혀 있을 문장을 상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