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단 1년을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2022년으로 돌아가겠다.

항상 사랑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어디를 가든 무엇을 말하든 사랑받았고
다가오는 미래가 두렵지 않았고
아끼는 지금의 차를 만나 어디든 다녔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애타도록 좋아해 보았고
처음으로 아빠와 자주 시간을 보냈고
처음으로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알았고
수많은 취미를 이때 가지게 되었다.

사랑하는 나의 23살
부디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무언가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열망

그러나 이미 ‘새로운 것’이라는 개념이 잘 알려진 시대

뒤샹의 그림자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인류의 역사에서 어디쯤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물이 범람하는 시대

더욱 생산적으로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모두 해변의 모래알 같은 것

위대한 것들은 아득한 모래알 사이로 더욱 빛난다.

이 안락한 현대의 품 안에서 우리는 - 나는 - 과거의 것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나는 정말로 간절히 세상에 무엇을 내놓고 싶은 걸까?

나는 아직도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현재’라는 것은 경계적인 것으로 포착될 수 없고 실재성이 없는 것이다.

현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면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인간이 만들어 낸 관념일 뿐인 ‘존재’라는 것은 무엇인가? 진짜로 있긴 한가? 진짜라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가 없으면 과거와 미래는 존재할 수 있는가?

현재가 있다 치면, 1초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있는 걸까?

매번의 현재마다 새로운 내가 생겼다 사라지는 건 아닐까?

본질을 찾고 논리를 맞추고 언어로 구현하려 할 수록 점점 본질에서 멀어진다.

논리와 언어라는 도구로 문제를 명확히 정의조차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문제에서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큰 진리에 도달하든 그 너머의 것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재하지 않는 현재에 존재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나는

나의 모든 상태가 확률적이라면 그 확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인지
의지
긍지

???: 자유의지는 없는데용?
염병하네 그냥 죽자!


내가 주는 사랑을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최고와 최악의 모습을 모두 보고도 똑같이 아껴주는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해보겠다.


생산성의 증가는 단순 노동 대비 생산량의 증가를 불러온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비용의 감소가 아니라,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한 비용이 압도적으로 감소되었을 때 일어나는 패러다임의 변화와 혁신이다.

예를 들어, 기술의 발달로 생산성이 높아진 예시로는 제조업이 있고,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생산성이 높아진 예시로는 쿠팡 로켓배송이 있다.

2026의 미국에서는 AI로 인한 생산성의 증가량이 금융시장, 채용, 정치, 정책 등 국가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나는 아직까지 AI가 단순 지식 노동을 대체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 외에 어떤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최근 벨류에이션을 높게 평가받는 스타트업들과 이슈가 되는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생산성 증가’를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높아진 생산성으로 세상에 혁신이 빵빵 터지고 있는가? 아니다.

혁신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나는 이 씨앗을 보면 양극화, 기본 소득 같은 키워드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AI가 있고, 그 다음에 무엇이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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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je.kwon

2026-01-3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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