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지만 나는 지금 소프트웨어 개발에 흥미가 없다. 살다보니 SWE가 되었을 뿐 코딩하는 게 설레었던 적은 없다. 직업과 나의 성향이 잘 맞았던 점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개발에 흥미가 없어진 것은 경험이 쌓이면서 ‘저건 이정도 수준이구나’, ‘저걸 하려면 이런 걸 하면 되겠구나’ 같은 것들이 가늠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는 것이 커리어로든 취미로든 와닿지 않았다. 이제는 꽤 어려운 것들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 가늠할 수 있는 것들은 뻔하고,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위험이 따르게 되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Deepmind나 Space X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수천 수만의 기여자 중 하나가 되어 다같이 배경을 색칠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싫증내는 속도도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큰 일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싫다는 것도 아님). 나는 이미 있는 걸 의심하고,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고, 싫증을 내는 데에 전문성이 있다. 대충 계산이 서는 일을 좋아하고, 예측이 전혀 안 되는 일은 자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명시적으로 나를 정의하는 것은 나에 대한 선입견을 주입하는 것 같아서 피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 3월에 아래와 같은 글을 적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새로운 모습을 쌓아가는 것 같다.


나의 개성이 많이 사라졌다. 불과 몇 년 전과 같은 날카로움이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잃고 나서 나의 개성을 다시 쌓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확고한 것에 끌린다. 날것의 개성도, 다듬어진 섬세한 개성도 좋다.

하지만 아직 방향을 찾지 못했다. 막연히 아무거나 쌓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나의 뾰족한 재능은 무엇이고,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7월에는 이런 말도 적었는데, 좀 과하게 적긴 했지만 잠시 잊고 지내던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완전한 자유는 없지만, 나는 완전한 자유를 원한다. 나는 항상 경기도민보다 먼저 침대에 눕고 싶다. 나는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선택지가 없다면 - 자유라는 이상이 사라진다면 - 죽을 것이다. 하지만 탐구를 멈추지 않는 한, 내가 스스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 T.S. Eliot


소프트웨어 개발이 수단이 되는 것은 상관 없지만 목적이 되는 것은 싫다. 무인 매장이나 요식업 최적화, 스마트팜 (with 백수 친인척) 같은 걸 해보면 왠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계산이 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들이는 자원 대비 부가가치가 높은 건 소프트웨어다. 생각이 돌고 도는 중인데 결국 이러다가 유튜브나 보고 말겠지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여는 건 책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옛날에는 하고 싶은 것/말 아무거나 질러도 ‘어쩔티비? 내가 맞고 넌 틀렸는데? 잘리면 딴 데 감 ㅋㅋ’ 같은 생각으로 편하게 일했었는데, 지금은 왠지 부담스럽다. 여러 측면에서 환경이 바뀐 영향이 크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내 회사도 아닌데 귀찮은 것만 빼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 같다. 다시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다양한 역량을 요구하는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잘하는 부분의 역량과 약한 부분의 역량이 둘 다 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장점이 단점을 커버해서 다행이다. 사람 참 쉽게 안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항상 하는 말이지만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그런 것’은 없다. 모두 상대적인 것이고 내가 그렇다고 믿으면 그런 것이다. 최근 ‘남들이 내가 의도한대로 믿게 만드는 것’과 ‘내가 의도를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알고야 있었겠지만 이제서야 깊게 공감했다. 그리고 의도와 관계 없이 누군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는 음침한 사람들이 있다.

당신이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미국에 처음 다녀왔다. 일주일 정도 전 직장 동료랑 서부에 다녀왔다.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돌아왔다. 미국은 상한과 하한의 간격이 매우 넓은, 분산이 큰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미국 트랜스퍼에 대한 생각이 상당히 막연했었는데, 이제는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미국행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고 아직 내가 미국에 가야 하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미국어와 영어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난 영어로 한국말을 해야겠다.


점점 깊이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많은 원인이 떠오르지만 - 인터넷의 보급으로 많은 사물이 연결된 것, AI가 등장한 것, 개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자유가 주어진 것, 시스템이 노후된 것, 생명이 소중해진 것, 환경이 안락해진 것, 과거만큼 빈틈이 많지 않은 것 - 선후나 인과는 없고 모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언제 망할까?


올해에는 꽤 많은 오케스트라 공연에 다녔다. 전율이 오르는 공연, 눈물이 흐르는 공연, 가슴이 뛰는 공연, 건조한 공연, 음이 틀릴까 불안한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이 있었다. 숙련되지 않은 연주는 기분이 나쁘구나, 기본기만 완벽한 연주는 감동을 주지 않는구나, 완벽한 의도가 전해질 때 감동을 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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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je.kwon

2025-10-1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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