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가서 멍때리다가 자유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었다. 어디 철학서에 이미 나오는 뻔한 내용일 수도 있다.


자유라는 것은 이상, 꿈, 허상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완전한 자유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갖가지 맥락과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유의지와는 관점이 약간 다른데, ‘이걸 정말로 내 의지로 한 게 맞냐?’ 보다는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택지를 선택의 후보로 넣을 수 있냐?’의 관점이다.

예를 들어, 욱제는 자유가 없다. 욱제는 8차선 고속도로를 빨간불에 살아서 건널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또한 욱제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욱제는 옆에 경찰이 서있는 한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을 제압하고 총을 탈취해 도주할 수도 있지만 욱제의 이성과 양심은 그러한 선택을 후보로 넣지 않을 것이다. 탈취한 총으로 아내를 사격하는 일은 지금 상상해버렸지만 평소에는 상상의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선택의 후보로 두는 선택지는 무한하지만, 개인이 선택의 후보로 두는 선택지는 유한하다. 우리는 모두 신에 근접했던 적이 있는데, 바로 아무런 편견이 없는 출생 직후 찰나이다. 아기들은 일이 의도대로 일어나면 즐거워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는 성장 과정에서 자유로운 (편견 없는) 선택을 하고, 무수한 좌절을 겪으며 선택의 후보를 줄여나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기는, 어느 시점이 되면 자유를 잃어버린다.

나는 자유를 크기 비교가 가능한 부분 순서 집합으로 정의하고, ‘주어진 제약 속에서 더 많은 선택의 후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더 자유롭다’라고 선언했다. 가령, 아마존의 중심에 욱제와 베어그릴스와 아기가 동시에 떨어졌을 때, 베어그릴스는 욱제보다 더 자유롭고, 아기는 베어그릴스보다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로움이 생존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관점으로, ‘개인의 선택지가 외부의 힘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클수록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하면 어떨까? 자기효능감이 떠오를 수 있으나 그것과는 살짝 다르다. 예를 들면, 37분 남은 버스를 기다리는 경기도민은 이미 씻고 누운 서울시민보다 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도민의 자기효능감이 서울시민에 비해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 혹은 ‘남들이 던진 그물의 빈틈을 메우는 일’을 한다면 개인의 선택지는 외부의 힘에 의해 개인의 선택지가 매번 바뀔 수 있다 - 이것의 전형적인 예시로는 군대와 공무원이 있다.

완전한 자유는 없지만, 나는 완전한 자유를 원한다. 나는 항상 경기도민보다 먼저 침대에 눕고 싶다. 나는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선택지가 없다면 - 자유라는 이상이 사라진다면 - 죽을 것이다. 하지만 탐구를 멈추지 않는 한, 내가 스스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 T.S. El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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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je.kwon

2025-07-2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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