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밤에 도착해서 지금은 10일 아침이다. 뭔가 많이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 여행하는 중에 어떤 사물이나 모델을 마주쳤을 때, 그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어떤 감상들을 느낄 수 있었다.
- 휴식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실 나는 휴식보다는 경험과 사진 촬영(?)에 초점을 두고 유럽에 왔다. 너무 빡세게 돌아다녔더니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휴식의 필요에 대한 사례가 하나 늘어나서, 좀 더 추상적인 관점에서 휴식의 중요성을 돌아볼 수 있었다.
- 서양과 동양의 차이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문화적 차이 뭐 이런 건 너무 뻔하고, 내 생각에는 각 집단이 지금까지 쌓아온 ‘가장 위대한’ 생각들의 깊이와 넓이에 차이가 있다. 어떤 집단이 가진 ‘가장 위대한’ 생각들에 따라 그 집단의 ‘생각의 공간’이 결정된다. ‘개인의 강함’의 중앙값은 어느 집단이나 비슷한 것 같다. 다만 ‘생각의 공간’이 큰 집단일수록 ‘개인의 강함’의 분산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아님 말고 수준의 헛소리임 ㅎㅎ ㅋㅋ)
- 현지에서 현지 음식을 먹어보니, 미국에서 김치찌개 먹다가 김밥천국 김치찌개를 먹으면 훨씬 싸고 수준이 높은 느낌과 정확히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localization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은 15일 13:39 GMT+1 포르투에서 리스본 가는 기차 안이다. Out 티켓은 7일 더 남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투자하는 자원에 비해 특별한 경험이나 도파민을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내일 돌아가기로 했다.
- 무계획 여행은 역시 많은 지출을 가져온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ㅋㅋㅋ
- 좋은 경험이었다. 나의 현재,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고민을 한 게 아니라 하게 된 이유는 내 의도와 상관 없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대한 고민은 크게 없었다.
- 포르투 와이너리에서 만난 스위스 노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Enjoy your life’ 라는 뻔하고 진심어린 조언을 듣고 enjoy라는 단어의 의미를 고민해 보았다. 나의 삶을 즐기고 기쁘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10일 이상 혼자 여행은 컨텐츠가 계속 바뀌지 않는 이상 좀 질리는 감이 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둘이서 오래 다녀본 적도 없음 ㅋㅋ
- 인문적인 측면의 새로운 경험들을 얻었다. 대중교통, 복지, 음식, 건축물, 자연, 뿌리는 향수, 노상방뇨, 화장실, 아직도 쓰는 열쇠, 음식점 여는 시간, 국경, 언어, 종교, 흡연, 대마, … 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양극화와 추상화, 인류의 멸망에 대해 막연하고 추상적인 고민을 했다.
지금은 15일 20:36 GMT+1 근본 에그타르트 먹고 비 피해서 숙소로 들어왔다.
- ‘어떤 나라의 물가가 비싸다’라는 문장에 위화감을 느꼈다. 정확히는 물가가 아니라 인건비가 비싸다. 인건비가 비싼 나라와 싼 나라는 무엇이 다른 걸까?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느 나라가 더 좋은 것일까? 나는 이것으로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 걸까?
- 인류라는 모델이 얼마나 복잡한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실감했다. 이 폭주기관차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고, 점점 더 빠르게 달릴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 ‘당신은 당신의 시대에 누구였는가?’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나는 ‘당신의 시대’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무지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아무 정보 없이 숙소에 떨어진 첫날 좀 불안했다. 모든 게 익숙하지 않고 이상했다.
지금은 19일 02:13 GMT+9 집이다. 아까 너무 많이 잤더니 잠이 안 와서 ㅋㅋㅋ 기억이 남아있을 때 뭐라도 마지막으로 적어보려고 노트북 켰다.
- 바르셀로나에서 갔던 피카소 미술관에서 뭔가 깨달았다. 창문에 새들이 앉아있는 똑같은 구도의 장면이 아주 많이 있었다. 새의 마릿수도, 색채도, 가로세로 비율도, 그림의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떄로는 종이가 아닌 곳에도 그려지기도 했다. 분명 같은 날 같은 장면을 그린 것 같은데 그림이 달랐다. ‘혹시 이 사람은 절대적인 진리의 존재에 챌린징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 보이는 창문은 바로 이런거야, 아직도 진리가 있다고 믿어?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한 5분정도 뭔가 사색에 잠겼었는데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ㅎㅎ;; (+ 이거 쓰면서 대충 찾아보니까 시기도 비슷한 게 입체주의 실존주의 뭐 대충 그런 느낌인 듯 ㅎㅎ)
- 아 이탈리아 가서 피자 먹고 올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