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나는 특정 지점에 상대적으로 빨리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환경과 극단적인 사람들과 극단적인 내가 만난 결과(?)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 보상작용으로 약점을 얻기도 했고, 디테일을 생략하기도 했고, 겪어야 마땅한 경험들을 많이 놓치기도 했다.
최근 내가 회사에서 느끼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사람에 대한 실망이다. ‘왜 저 사람들은 내게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저 사람은 내가 하나를 가져가면 둘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 아닌가?’, ‘왜 그들만의 성역을 만들려고 하는가?’, ‘왜 저런 안 중요한 얘기로 월급을 낭비하는가?’, ‘저건 그냥 일하기 싫다는 말이잖아?’, ‘30분이면 할 걸 왜 저러고 있지?’, ‘진짜 너무하네…’, ‘아니 진짜로?’, ‘?????’, ….
어제 회사에서 나보다 훨씬 큰 사람과 매우 긴 시간동안 ‘선후배였다면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라는 내용의 대화(?)를 하게 되었다. 많은 생각을 하며 들었고, 많은 생각이 정리되었고, 다시 많은 생각이 생겼다. 흐릿하게 보이던 것이 또렷해졌고,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던 것을 수용하게 되었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했다.
불평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뭔가 상황이 마음에 안 들고,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흘러가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냥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내가 충분히 큰 사람이었다면, 내 생각이 충분히 깊었다면, 내가 이야기를 충분히 잘 했다면 분명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반대로, 내 생각이 너무 얕거나 시야가 너무 좁은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보는 것들을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제약이다. 내가 그러한 제약들로부터 자유로울만큼 큰 사람이 아니라면, 제약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제약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으며 나를 성장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의 생존을 경계해라
인간은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살아남기 위해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
종종 조직의 생존보다 개인의 생존에 최적화되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 있다고 해보자.
- 회사의 가치: 100억 —(성장)—> 1조
- CTO의 역량: 500억 —(성장)—> 2000억
이제 이 CTO는 다른 작은 회사로 옮길 수도 있고, 1조 회사에 남을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100억 회사를 1조 회사로 키운 CTO’라는 위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본인보다 5배 큰 회사에서 CTO로써의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개인의 생존에 최적화 된 비이성적인 선택들을 하게 될 수 있다.
영향력의 원
7 habbits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한다. 지식의 깊이, 직위, 특정 사건 등 여러 맥락 아래에서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진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내 영향력의 원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선 원을 넓혀야 한다. 예를 들면 학습을 통해 전문성을 쌓거나, 승진을 통해 책임과 권한을 키우거나,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원을 넓힐 수 있다. 한편,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에 ‘관심’을 넘어 ‘간섭’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난하지 말고, 무의미한 비판도 하지 마라
아무리 바보같아 보이고, 이해가 되지 않고, 객관적인 잘못이 보이더라도 말을 아껴야 한다. 쓸데없이 냉소적인 말을 꺼내지 마라. 내 영향력의 원이 닿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내가 뱉는 모든 말은 나의 약점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일에 감정을 넣지 마라
본인도 주변도 힘들어진다.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힘들다. 시야에 제대로 된 것이 들어오지 않고, 답을 알고 있더라도 돌아가게 된다.
평균의 위대한 승리
조직은 천재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다. 평균의 사람들이 모여 위대한 승리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테크니션과 엔지니어
테크니션은 주어진 기능을 잘 수행하는 데 집중한다. 테크니션은 엔지니어가 설계한 도면을 그대로 구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객선을 용접하던 기능공이 항공모함 용접을 할 수는 있더라도, 설계에 와서는 오리배 정도는 흉내낼 수도 있지만 낚싯배는 설계할 수 없다.
엔지니어는 공학적인 관점에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진다. 전력을 어떻게 관리할지, 통신을 어떻게 할지, 엔진이 얼마나 강해야 하는지, 요구되는 부력은 얼마인지, 어디의 용접을 강화해야 하는지, 어디서 용접 비용을 아껴도 되는지, 몇 명의 기능공이 필요한지 같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직접 용접을 하기도 한다.
상위자를 인정해라
상위자를 인정해라. 상위자는 나보다 더 추상화된 업무를 수행한다. 상위자는 내가 다루는 수준의 정보를 여러 곳에서 병렬적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한다. 그 능력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를 인정하지 않으면 미묘한 곤란함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상위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목표를 찾아라
목표가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쁘다. 목표가 없는 일은 자원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다른 일을 방해하기도 한다. 목표가 없는 일은 아무런 성과도 정의할 수가 없다. ‘이걸 왜 하는 건데?’, ‘이걸 하면 뭐가 좋은데?’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목표 위에는 어떤 목표가 있는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목표를 계속 타고 올라가서 마지막에는 회사의 비전과 철학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더라도, 나의 목표가 상위의 목표 달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내 성과는 큰 틀에서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38만 유저가 쓰는 제품의 팀장이라고 하자. 우리 팀이 ‘50만 유저를 확보하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총력을 기울이는 사이에 회사가 다음 펀딩을 받지 못해 망해버린다면, 50만명의 유저들에게 서비스 종료 메일을 보내야 한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회사의 비전에서 출발해 나에게까지 타고 내려오는 조직의 단계별 전략들을 이해해야 한다. 회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해야만 본인과 조직이 이상한 방향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삼성과 같이 큰 회사들은 개인이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조직이 잘 운영될 수 있는 위대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제약을 받아들여라
모든 일은 주어진 제약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인차와 5천원이 있을 때, 18시에 강남에서 완성되는 제품을 19시까지 홍대로 옮기는 일’이 주어졌다. 출퇴근 시간대라면 교통체증이라는 제약 때문에 법인차를 이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퀵을 보낸다고 하면 배송료라는 제약에 걸린다. 만약 내게 시간의 제약이 없다면 지하철을 이용해 직접 물건을 옮겨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러한 제약들은 묵시적일 수도, 무의식에 존재할 수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제약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나의 실력, 시간, 금전, 인력, 시장 상황, 인간 관계, 조직 구조, 영향력의 원 등 모든 상황이 제약이 될 수 있다. 제약을 잘 관리하는 능력은 문제해결 전략을 수립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
f(비용) = 결과
모든 일은 무언가를 투자해서 무언가를 얻는 일이다. 이것을 정량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는 ROI(Return On Investment)이고, 나는 가성비라고 부른다. 일의 성격에 따라 비용과 결과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리서치 업무는 투자 기간이 길고 결과가 가시적이거나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공정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일은 투자 대비 생산량의 그래프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이런 경우는 그래프상에서 최적의 지점을 찾거나 가성비를 올리기 위해 공정 최적화, 공정 재설계 등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결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가성비를 희생하기도 한다.
생각의 깊이
생각의 깊이는 말에서 드러난다.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충분한 맥락 속에서도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본인의 생각이 훨씬 깊어서 그것이 무의미하게 들리거나, 본인의 생각이 훨씬 얕아서 그것이 추상화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얕은 생각을 들었을 때 몇 문장만 듣고도 그것의 깊이를 파악할 수 있다.
업무가 추상화된 정도에 따라 업무 수행에 필요한 생각의 수준은 다를 수 있고 이것은 좋고 나쁨의 관점이 아니다. 한편,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앞서 설명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큰 도움이 된다.
시야의 넓이
생각의 깊이만큼 중요한 것은 시야의 넓이이다. 주어진 목표만을 매우 잘 달성하고자 한다면 시야의 깊이를 어느정도 좁히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시야를 넓히면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해야 하고, 시야가 넓어지고 나면 기존의 작은 목표들이 사소해지기 때문이다.
일이 추상화 됨에 따라 시야의 넓이는 확장되어야 한다. 본인이 보는 시야보다 더 큰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충분하지 않은 시야에서는 마땅히 고민해야 하는 지점의 생각이 전혀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나의 생각은 내가 보는 시야 안에서만 깊어질 수 있다.
논리의 역할
논리는 일을 틀림이 없게 한다. 모든 의사결정의 근간이 된다.
논리는 특히 기술적, 전술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 중요하게 작동한다. 예를 들어, ‘1초에 1만건의 구매 요청을 처리할 수 있도록 아키텍처를 개선’할 때는 다음과 같이 숫자와 논리를 기반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의 서버로는 1초에 1천건의 처리가 가능하다. 앞단에 cache를 붙이면 2천건을 처리할 수 있고, replica를 5개로 두면 병렬적으로 1만건을 처리할 수 있다. 이는 대규모 분산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보다 5000만원 저렴하다.’
시야의 차이에 의해 어떤 논리는 다른 논리에 잡아먹힐 수도 있다. 위의 아키텍처 개선 업무는 예를 들면 다음의 논리에 의해 잡아먹힌다. ‘우리는 기술 회사로써 다음 라운드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분산 시스템이라는 키워드를 가져가야 한다. 그것이 5000만원 정도 더 비싸더라도 회사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회사의 생존이 5000만원을 아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작은 논리는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된다.
이야기의 역할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타인을 설득할 때 논리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고,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나의 논리가 아무리 견고하고 나의 생각이 아무리 깊더라도, 때에 따라선 논리만 가지고 타인을 설득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 논리가 중심이 되는 대화에서는, 상대방이 내 주장을 이해하기보다 논리의 사소한 오류를 지적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깊은 생각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 나의 주장이 크면 클수록, 관심사가 다를수록, 생각의 깊이 차이가 클수록 논리는 힘을 잃는다.
그럴 때는 이야기의 힘이 커진다. 이야기와 논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대방에게 ‘바로 보이는 무언가’를 제공하는지 여부이다. 상대방에게 논리만 제공했을 때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 상대방의 몫이 된다. 그러한 상상은 꼭 좋은 방향으로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반면 정말 잘 짜여진 이야기는 ‘믿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잘 짜여진 이야기는 논리의 결함을 숨겨주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논리를 가공해 상대방을 (때로는 나를) 설득할 때 사용하는 전략 중 하나이다. 이야기를 잘 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같은 사실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평범한 이야기는 상대방을 설득한다. 잘 쓰인 이야기는 상대방의 생각을 키워준다. 상대방을 가슴 뛰게 하고, 다음을 상상하게 하고, 그 이야기에 구태여 흠을 잡고 싶지 않게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 쓰는 사람을 ‘위대한 사업가’라고 부르고, 또 다른 말로는 ‘위대한 사기꾼’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