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2
요즘 나에 대한 정의(definition)가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는 일도 취미도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정해두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파악하기가 어렵고, 항상 변하고, 언어로 담아내기도 어렵다. 사실 일, 취미, 재미, 좋아한다 같은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특정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마치 자폐가 있는 것처럼 말을 아끼게 된다.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생각들은 이런 것들이다: 본질은 없다, 모든 사물에는 다면성이 있다, 모든 생각은 편견이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
2025-07-05
3달동안 꽤 변화가 있었다. 취미와 같은 것들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고 - 요즘엔 식물을 키우고, 오케스트라 공연에 다니고, 헬스를 좋아하고, 사진도 종종 찍고, 집에 핸드드립 장비를 갖췄다 - 아직 구술하긴 어렵지만 개성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위 4월에 적힌 일기는 너무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세상이 백지라면 존나 멋진 색안경을 만들어 팔면 부자가 되는 것 아닌가?
회사에서 잠시 다른 성격의 일을 맡아 쉬어가는 주를 보내며 큰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상기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업무상 고민들은 모두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냥 일이 뻔해서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 나이에 이 돈 받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놈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나은데 뭐가 부족하지? ‘내가 아니라 ㅇㅇㅇ였다면 결과는 달랐겠지’ 같은 생각은 집어치웠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겠다.
남들이 던진 그물의 빈틈을 촘촘하게 메우는 일은 정말 재미가 없다. 빈틈 속에서 나의 그물을 다시 던질 수도 있으나, 지금 내가 속한 빈틈은 너무도 작다. 내가 일구는 땅을 통제하고, 통째로 뒤집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내 위로 너무나도 많다. 내가 서있는 세상이 작은만큼, 세상에 남아있는 백지도 줄어들게 된다. 많이 배우고 있지만 벗어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에는 나만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스타트업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 그릇보다 큰 세상이라면 어디든 좋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엔 과거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다. 과거에 만났던 훌륭한 사람들의 기억은 정말 큰 자산이다. 그때 그래서 그렇게 했구나,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구나, 그런 일도 있었지, 내가 그때 그 사람의 나이가 되면 난 더 잘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인생에 두 번 만나지 못할 사람이었구나,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