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0

8년간의 수영 연습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그리고 그 의문은 모든 것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어렸을 때 인간은 철학적으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내가 옳은가, 틀렸는가”라고 자문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유효성에 대해 많이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단순하게 다른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선택한다. 더 큰 다음에야 사람들은 자기가 옳은가, 또는 잘못하는가, 그리고 변화해야 하는가를 자문한다.

산다는 것, 그림을 그린다는 것, 화가라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아마 지금도 그렇다. 사람들은 소위 자유로운 생존을 바라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셨단 말이죠? - 결코 걱정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이 말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다.

체계화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 나는 결코 기존의 형식을 수용하고 복사하고 그것의 영향을 받는 데 승복할 수 없었다.

어떤 감정이 이 시기동안 당신을 움직이게 했습니까? - 어떤 특별함 호기심이었다.


2025-06-17

무언가 다른 것을 향한 창문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영향을 받는다.

원천은 나체 그 자체이다. 기대어 누워 있거나 서 있는 고전적인 나체와는 다른 나체를 그리는 일, 그리고 그 나체를 움직이게 하는 일. 그것을 그렸을 때는 전혀 우습지 않았던 것이 우스운 것이 되어 거기 있었다. …. 움직임은 하나의 추상이며, 그림 내부에 분절별로 명확히 그려진 추론이다. 실제 인물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 필요는 없다. 근본적으로 운동을 그림에 삽입하는 것은 관객의 눈이다.

“자연주의의 노예 쇠사슬을 영원히 꺾으리라”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고 싶어할 때, 정물을 그리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의 형태의 운동은 우리를 불가피하게 기하학과 수학 속에 들어가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기계를 제조할 때와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무언가 다른 것을 향한 창문을 열었다.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그와의 대화는 항상 “예. 그러나…” “아니오. 그러나…“였지. 무어라고 말하든 그는 반대했다.

그것은 정말 굉장했었다. 무대 위에는 마네킹과 조금씩 움직이는 뱀이 있었다. 그것은 완전히 괴상한 광기였다. 대사는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실 열심히 듣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강요되듯 이것들의 영향을 받았다. 나 자신만의 작업을 하기 위해 매우 개성적인 특징을 간직하기 바라면서.


2025-06-22

근본적으로 나는 파카비아처럼 변화하는 데 광적이었다. 6개월이나 1년동안 무엇인가를 한다. 그리고 다른 일로 옮겨간다. 파카비아는 평생동안 그렇게 했다.

그것은 더 이상 내게 흥미롭지 않았다. 그것은 끝났다. … 나는 계속 이전에 있었던 일과는 단절된 것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나는 같은 것을 다시 쓰지 않으려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일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경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과거의 것을 세부적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정확하고 완전한 단절을 이루는 것은 끝없는 투쟁이었다.

나에게는 3이라는 숫자가 중요한데 비교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기수법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단위이며, 둘은 사본, 이원성이며, 셋은 잉여이다. 3이라는 단어에 접근하자마자 우리는 3백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3과 마찬가지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이든 세 번 행하자고 결정했다.

오브제 선택은 매우 어렵다. 왜냐 하면 당신들은 2주 후에 당신들은 그것을 좋아하든가 싫어하든가 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학적 감동이 없는 일종의 무관심성에 도달해야만 한다. … 레디메이드의 선택은 시각적 무관심성과 함께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미의 부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당신에게 취미란 무엇을 뜻합니까? / 하나의 습관. 이미 수용한 것의 반복. 무엇을 여러 번 다시 한다면 그것은 취미가 된다. 좋거나 나쁘거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취미이다. / 이 취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 기계적인 제도를 통해서 한다. 왜냐 하면 기계 제도는 모든 회화적 관습 밖에 있기 때문에 어떤 취미도 견뎌 내지 못한다. / 당신은 끊임없이 작품 제작을 부인하고 계십니다. / 미학적 의미에서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일, 하나의 형태, 또는 색채를 만드는 일,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일을 부인한다.

나는 책임이 없다. 그것은 이미 만들어져 있으며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 변명이 있는데 나는 책임에 대해 반대한다.


2026-01-25

일하기보다 숨을 돌리는 것이 더 좋다

산다는 것은 얼마나 버느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얼마나 쓰느냐의 문제이다. 무엇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아는 것이 문제이다.

전보에 당신은 이렇게 썼습니다. “친애하는 파카비아, 곧 다시 만나세.” … 일종의 장례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읽을 인사말을 보내 달라고 청해 왔다. “곧 다시 만나세.” 이것이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물론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믿음’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판단’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런 말들은 세계가 그것에 근거해 있는 무시무시한 것이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 자신을 믿겠지요? 아니다. 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존재한다는 개념은 인간의 발명이다.

나는 카페 웨이터처럼 산다

결과적으로 만약 우리가 자기 표현을 위한 다른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세상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수단, 새로운 물감, 새로운 조명법을 제공한다.

나는 새로운 것을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다. 누군가 극히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면 나는 그것을 제일 먼저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뭔가를 바라보기 힘들게 하는, 또는 바라보려고 시도하기 어렵게 하는 과거가 있다. 우리는 좋거나 싫거나 간에 어떤 취미의 언어를 자신 안에 축적한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만약 이 무엇인가가 당신의 메아리가 아니라면, 당신은 그것을 바라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시도한다. 나는 항상 내 낡은 지식을 버리려고 시도한다. 적어도 소위 새로운 것을 바라볼 때에는.

나는 내가 좋다고 생가하는 것에 그다지 큰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의견일 따름이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결정적인 판단을 입 밖에 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신에게는 예술 작품보다는 예술가의 태도가 더 중요합니까?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두뇌로서의 개인이, 그들이 만든 것보다 더 흥미가 있다. 왜냐 하면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기 자신을 반복하는 일들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은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 강요된다. 사람은 항상 발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예를 들면 한 달에 작품을 한 점 해야 한다는 오래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은 그들이 작업하는 속도에 달렸다. 그들은 한 달, 또는 일 년마다 그리을 사회에 빚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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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je.kwon

202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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