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무엇인지는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계속 알아가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지기로 마음먹기’는 꽤 효과적인 것 같다. 만약 단순히 결심에 의해 항상 행복할 수 있다면, 어쩌면 살아가는 것 자체를 행복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
방금 찾아보니 happy의 어원적 의미는 ‘우연적 사건’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단지 현상(사물)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인 게 아닐까?
무언가를 행동하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 할 수 있으니까 한다 -> 남을 죽일 수 있으면 죽일 것인가?
- 하고 싶으니까 한다 -> 남을 죽이고 싶으면 죽일 것인가?
- 인간으로 구별되기 위해 한다 -> 생각 없이 하는 건 모두 행동이 아닌 것인가? 행동의 정의를 폭력적으로 할 것인가?
- 나로 구별되기 위해 한다 -> 정확히 똑같이 행동하는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인가?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를 측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 생존하기 위해 한다 -> 껌을 바닥에 뱉는 건 생존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 이유가 중요한가 -> 자연, 신, 믿음으로 치부할 것인가?
앞으로도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답 없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생각을 계속 해야 할까?
최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라는 책을 선물 받아서 읽고 있다. ‘네가 태어난 것은 느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행동하기 위해서인가?’라는 구절이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죄악처럼 묘사하였는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워서 몸을 데우는 일’과 ‘인류를 달에 보내는 일’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왜 침대에 누워서 빈둥대면 안 되는 것인가? 느끼는 것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가진 특성 중 하나인데 왜 이를 배척하는가? 느낄 수 없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도 답 없는 생각 중 하나인 것 같다.
과거에 비해, 조예가 없는 것들의 정교함을 알아채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영화의 연출, 음악의 구성, 자연의 변화, 시스템의 구조, 현상(사물)의 다면성과 같은 것들이다.
영화 위플래쉬를 봤다. 교수의 철학에 나는 크게 동조가 되었고, 경계를 밀어내는 주인공의 모습에 크게 동요했다. 명상록에서도 행동을 강요하는 문장들에 계속 시선이 멈춘다. 나의 삶이 나태해진 걸까? 나는 위대해지고 싶은 걸까? 나는 어디까지 감수하고 어디까지 얻어내고 싶은 걸까? 나는 어떤 점을 찍고 싶은 걸까? 위대하다는 건 무엇일까? 그냥 회사를 다니면 위대해질 수 없는 걸까?
나는 개성을 잃어가고 있다. 다른 말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과 같은 날카로움이 사라진 것 같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것을 잃고 나면, 다시 쌓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확고한 것에, 확고한 사람에게 끌린다. 날것의 개성도, 다듬어진 섬세한 개성도 좋다.
하지만 아직 방향을 찾지 못했다. 막연히 아무거나 쌓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나의 뾰족한 재능은 무엇이고,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지금 하는 일의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회사 밖의 타인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밖에서는 신경도 안 쓰거나 그냥 하면 되는 일인데, 여기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견해가 아닌 현상을 이해시키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문제이기에 따로 고민해보고 다시 적는다.
- 모든 경우를 다 인지하고 고려한 줄 알았는데, 매번 새로운 사례가 튀어나온다.
- 작은 수정이라도 고친 것을 확인하고, 배포하고, 실험하는 이터레이션이 매우 느리다.
- 이해 관계가 많아지면 일이 지수적으로 느려지기에 타인과 최소로 협의할 수 있는 전략을 찾아야 한다.
- 기존의 수많은 기능에 diff를 만들지 않고, 지표에 티끌 초과의 손해를 보이지 않으면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 …
여기서 더 요약하면
- 제약이 너무 많고, 제약이 계속 추가된다.
라고 하겠다.
이제 회사에서 신입이라는 느낌이 사라지고 있다. 그동안 느낀 점들을 흩어지기 전에 모아둔다. 여기서 내가 상상하는 빅테크는, 모니터에서 마주하는 회사의 시스템들과 내 주변의 특정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여기서 내가 상상하는 작은 회사는, 그동안 내가 경험하고 전해 들은 모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다.
- 아무나 붙잡고 얘기해도 의심이 들지 않는, 뾰족함이 튀어나오는, 나보다 뭐라도 특출난 환경은 최고의 환경이다.
- ‘충분히’ 위대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여러 의미에서 정말 중요하다; 중요한 게 아니라 회사는 그것밖에 없다.
- 동료가 복지라고 주장하는 회사들 중 충분히 위대한 사람들이 충분히 모여 있는 회사는 내 인지 범위 안에는 없다.
- 톱니바퀴로써 기능하는 삶은 꽤 만족스럽고 꽤 나태하다.
- 입사 5개월 정도가 되어 가는데, 어색함이 사라지고 나니 슬슬 권태가 생기는 것 같다.
- 어디든 갈 수 있는 커리어가 되었지만 어디도 가기 싫어졌다.
- ‘빅테크의 무언가’를 외부에서 베껴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외부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작은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접근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개인이 다루는/다룰 수 있는 문제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 작은 회사에서는 3명이 돌탑을 쌓고, 큰 회사에서는 무너질 것 같은 돌탑에 100명이 돌을 던진다.
- 작은 회사에서는 업무의 크기를 역량의 바운더리에 근접하게 조절하는 것이 여러 의미로 어렵다.
- 우리는 모두 각자가 가진 제약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