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적고 오늘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참 어색하다.
오늘
한 번도 오늘이라는 단어를 홀로 적어서 관찰해 본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요즘 매일의 오늘을 보내고 있다.
나는 행복하기로 했다. 이유는 찾지 못했다. 사실 행복이 뭔지 잘 모른다. 이 이상으로 생각을 하는 일은 지금의 나에게 너무 어렵고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이 믿음은 종교적인 믿음과 비슷하다.
‘나는 지금 행복하기로 했다’라고 생각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행복을 쫓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지금 찾은 것 같다. 오늘부터 해봐야겠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고, 어제를 기억하면 좋겠다. 하루하루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요즘에는 과거나 미래에 살고, 타인의 삶을 살고, 나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자꾸 외면하게 된다.
미술에 흥미가 생기고, 현대 미술에는 흥미를 잃었다. 만약 축구에 규칙이 사라져 대포로 미사일로 공을 쏴댄다면 사람들은 더이상 축구에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규칙이 사라진 현대에는 예술가의 수와 동일한 수의 규칙이 존재하는데,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참 난감한 일이다.
회사에서 ‘얼마나 모호한 일을 얼마나 잘 풀어낼 수 있는가’라는 관점의 역량 척도를 배웠다. 비슷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명료한 이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점에서 출발하더라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냐에 따라 다른 미래가 그려진다. 지금은 주어진 맥락(e.g., 도구, 자원, 시간, 역사, 환경, …) 속에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기 위한 노력들을 체험하고 관찰하고 있다.
지금의 회사는 추상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기에 적합하고, 그래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인 것으로 느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겹쳐 보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대기업에 온 걸 티라도 내는 듯이, 원래도 없던 기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작아지는 것 같다. 이를 경계할 것인지, 다른 면을 더 밀고 나아갈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글을 적으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감성과 이성이 모두 서명한 합의안’이 그 동력이라고 짧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침의 커피, 매일의 빨래, 음식의 선택, 청결의 수준, 감정의 동요,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선택과 같은 것들에는 이성적인 이유가 없다. 감정, 취향, 취미, 무엇이라고 해야 좋을까? 몇 달이 지나 다음 글을 적을 땐 답을 찾았길 바란다.
다양한 현상과 관점에서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 생각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어딘가에 적고 나면 생각을 이어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적어본다.
무엇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안타깝게도 이해해버렸다. 많이 고민해봤지만 잊어버리길 바랄 수도, 다시 돌아오길 바랄 수도, 인사를 전할 수도 없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언제든 몇 번이든 뒤돌아보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