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뭔가 일이 끝나면 후기를 남기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요즘에는 왠지 모르게 후기를 남기고 싶지가 않더라구요.

사실 숭고한도 후기를 남길 생각은 없었는데 여러가지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항상 해오던 그런 비슷한 일인데, 왜 이번에는 끝이 아쉽고 공허한지 모르겠어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에 함께 고생한 운영진들도 이제 자주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섭섭하고 마음이 별로 좋지 않네요.

그래서 지금 이 마음이 흩어지기 전에 글로나마 몇 자 남기려고 합니다.

숭고한이 무엇인가

세 학교의 네 알고리즘 동아리(숭실대 SCCC, 한양대 ALOHA, 고려대 ALPS, 고려대 AlKor)가 모여서 알고리즘 공부하고 친해지는 행사입니다.

올해로 2회째이고, 원래는 ‘고숙한’으로 2년 진행했던 행사였습니다. (숙 = 숙명여대)

일주일 내내 매일 하루종일 강의하고 공부하고 술 먹는 행사라서

준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피곤한 행사인 것 같아요 (?)

첫 만남

제 캘린더에 따르면 5월 말에 회장끼리 처음 만났고, 6월 말에 운영진들이 처음 모였네요.

운영진들 처음 만났을 때 뒷풀이를 갔었는데 이때 술을 엄청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들 1차에서 술 엄청 먹고 2차 가서 동아리 회장으로서의 고충을 공유했는데, 동지들을 만난 것 같아서 정말 기뻤어요 흑흑

준비 과정

제 캘린더에 따르면 오프라인 회의만 5번이네요.

할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정말!

가장 큰 난관이 장소와 후원이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ㅠㅠ

오죽하면 후원사 구하려고 페북에 후원사 구하는 글까지 썼겠어요 (…)

막판에 되어서야 장소와 후원을 가닥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갑자기 장소와 후원이 쏟아져서 그게 또 엄청 힘들었지만 (…) 감사한 일이에요.

이외에도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여기에 퍼블릭하게 쓸 건 아닌 것 같아서 제 가슴에 묻어 둡니다.

커리큘럼

커리큘럼은 제가 짰습니다!

제 강의와 과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작년 커리큘럼은 너무 진도가 느린 것 같아서

조금 더 알차고, 필요하고, 대회에 자주 나오는 것들을 위주로 재구성했습니다.

너무 어렵지 않냐 하는 우려가 굉장히 많았는데 제가 강하게 주장해서 다 꺾어버렸습니다 하하하하

그래서 성공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혼자 다시 공부하면서 아 이거 그때 그거지 하는 감각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래서 그것을 얻어 갔다면!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강의

저는 초급반 1일차 PS 기초 강의를 맡았습니다.

초급반 1일차가 여러모로 중요한데, 꽤나 떨렸습니다.

PS에 대한 첫인상이고 첫단추여서 잘못 하면 단체로 망하거든요 (…)

PPT 앞쪽에는 온갖 꼰대같은 말 잔뜩 써놓고 이상한 링크도 걸어서 읽을 사람 읽어보라고 던져줬어요. (조회 수 보니까 생각보다 읽은 사람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

다들 똑똑하지만 프로그래밍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부러 수학적인/원론적인 접근을 많이 했습니다.

또 일부러 수학 카테고리의 문제들을 선별해서 키보드 앞이라고 펜과 종이 없어도 되는 게 아니다 라는 걸 특히나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짧은 코딩으로 재밌는 문제를 푸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또 최대한 친근하게 재밌게 진행하려고 노력했어요.

나중에 뒷풀이랑 엠티에서 강의 좋았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빈말이라도 정말 고맙습니다 ㅠㅠ

(이때 첫날 준비 + 강사 + 운영진으로 일하려니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대회

저는 졸렬하게 ez problem 던져놓고 했습니다.

숭고한 출제할 즈음이 4달에 걸쳐 3개의 대회를 주관한 바로 직후여서 대회에 진절머리가 나 있는 시기였어요.

하지만 이븐하더님의 하드캐리로 출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서 와서야 정말 후회하는 건,

이때 내가 조금 더 출제와 검수에 관여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조금 더 좋은 문제와 대회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옆에서 혼자 고생하시는 걸 두 눈 뜨고 봤음에도 왜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조금 후회스럽습니다.

당시의 저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그 사건

대회 당일에 그 사건 이 있었어요 (…)

참가자 계정을 전달받지 못해서 대회를 진행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

그래서 대회 3시간 전에, 3개의 동아리에서, 3개의 서버에, 3개의 다른 저지(QOJ, DOM, CMS)를 각각 구축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ㅠㅠ)

다행인지 뭔지 85분의 딜레이 끝에 BOJ에서 대회를 진행했습니다.

이것도 제가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제 담당이 아니라고 한 번 물어보지도 않은 게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엠티

진짜 낮에 37도 되는 날씨에 저 땀으로 5조5억 리터는 흘린 것 같아요 ㅠㅠ

누가 내 박스에 소주만 20병 넣어놨어 어떤 놈이야 ㅠㅠ

레크리에이션 준비하고 고기도 굽고 게임도 하고 재밌었어요

술게임 시작할 때 쯤에 진짜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잠깐 잤었는데, 이후로도 피곤이 가시질 않아서 술을 많이 못 먹었습니다 ㅠㅠ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네요.

여러가지 이유로 첫차 타고 MT에서 했는데 왠지 정말 가기가 싫었어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ㅎㅎ” 웃으면서 나오긴 했는데, 이대로 떠나면 다시는 못 보게 될 것 같은 느낌…

별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ㅠㅠ

마치며

엠티를 떠날 때의 좋지 않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글을 적었습니다.

첫차 타러 가는 길에 맞았던 선선한 바람이 계속 생각 나네요.

지금 생각하니 왜 이렇게 후회되는 일이 많을까요?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잘, 조금 더 재밌게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세미나 4일차 쯤에 너무 힘들어서 ‘X발 이거 두 번은 안 한다’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또 하고 ㅅ… 아 그건 아닌가?

대회 뒷풀이에서 졸업생 선배님이 “재밌겠다 나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원래 힘든 게 나중에 보면 재밌는 거야” 했었는데, ‘X발 그게 뭔 X소리야’ 했던 걸 이틀만에 그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또 감회가 새롭네요.

해가 지날 수록 점점 더 많은 걸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고, 고생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생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같은 말 한마디가 정말 고마웠어요.

이게 나이를 먹는 거겠죠?

뭔가 더 적어내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서도 수정도 없이 쭉 적어 내려왔는데, 딱히 올려 보면서 글을 수정하거나 추가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감정이 살아 있잖아요? 하하)

나중에 이불킥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이런 글이 다 그렇죠 뭐

함께 했던 운영진 분들 정말 감사하고 (저같은 애X끼 데리고 일하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특히 우리 부회장님 진짜 고마워요 ㅠㅠ

다들 건강하게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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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je.kwon

2019-08-1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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